2008년 07월 21일

베트남전쟁 참전
한국군 파월경위
1960년대의 월남참전은 우리 역사상 최초의 대규모 해외파병이었으며, 정치·경제·군사적으로 국가발전에 크게 기여한 중대한 사건이었다.
월남참전을 결정한 당시의 상황은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민주주의 진영과 소련을 중심으로 하는 공산주의 진영이 대립함으로써 냉전체제가 계속되고 있었다.
그리고 한국 국내사정은 남·북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상황에서 군사혁명으로 수립된 정부가 국가안보를 의존하고 있는 미국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국민의 지지도 미약하여 불안정하였다.
또한 정부는 무력적화통일을 기도하고 있는 북한의 재침에 대비하는 등 국가안보태세를 튼튼히 하여야 했으며, 국가예산의 절반 정도를 외국원조에 의존하였으므로 경제를 일으켜서 실업자를 해소하고 가난을 극복하여야 했다.
한국은 미국을 위시한 자유우방국가들의 도움으로 김일성이 일으킨 공산침략을 일단 저지하였으나 정전상태에서 휴전선을 경계로 하여 첨예하게 대치하고 있음으로써 국가안보가 가장 중요한 과제 였다.
한편, 남 북으로 분단된 월남은 1960년대 초에는 민주국가인 남부월남이공산국가인 북부월남(월맹)의 도전을 받아 고전하고 있었다.
한국정부는 월남정부로부터 지원요청을 받은 바 있으며, 군 수뇌들과 월남 참전문제를 검토한 바 있다.
우리나라는 64년 9월 이래 최근에 이르기까지의 사이에 전후 6차에 걸쳐 국군을 월남에 파견하게 되는바 이제 그 경위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최초의 월남파병은 1964년 7월15일 당시의 '구엔 카'정부의 요청에 의하여 그 해 9월 22일에 1개 의무중대(제101이동외과병원) 장병 130명과 태권도교관단 10명을 보내게 된데서 비롯된다. 우리나라 헌법에는 제56조 2항에 "선전포고 국군의 외국에의 파견 또는
외국군대의 대한민국 영역안에서의 주둔에 대하여도 국회는 동의권을 가진다"라고 규정되어 있기 때문에 국군파월에는 그때마다 국회의 동의가 필요하였는데 정부의 동의요청에 접한 당시의 국회는 별로 이의를 제기함이 없이 이를 받아들여 만장일치로 가결하였다.
이리하여 파월된 130명의 의무중대장병들은 사이공 동남단에 위치하고 있는 '붕타우'라는 곳에 병원을 설치하고 월남군 전상자의 치료에 종사하는 한편 의료 써비스의 혜택을 받고 있지 못한 인근 민간인 환자에게까지도 봉사의 손길을 뻗치고 있을뿐더러 심지어는 베트콩 부상자까지도 수용가료하여 줌으로써 십자군정신을 아낌없이 발휘하고 있다.
제1차 의무중대파견에 뒤이어 다음해 1월에는 이른바 '비둘기부대'로 알려진 제2차 월남파병이 있었다.
즉 1965년 1월2일 월남의 '판 당란' 외상은 한국 외무장관에게 비전투부대 특히 공병단과 자체정비수단을 구비한 수송부대의 지원을 요청해 왔다.
이에 대해 정부는 동년 1월 8일자 국무회의에서 약 2천명으로 된 非전투지원부대를 파월시킬 것을 의결하고 이어 15일에 제47회 임시국회에다 동의요청을 하게 되었다.
당시 국회는 제1차파병때와는 달리 비둘기부대가 비록 非전투부대이기는 하나 전후방이 뚜렷치 못한 월남전선에서는 희생이 우려된다는 점, 월남의 정국이 심한 혼돈상태에 있다는 점, 미국의 대월정책이 확고하지 못하다는 점등을 이유로 해서 상당한 논란이 전개되었는데 26일자 본회의에서 표결한 결과 재적의원 125명중, 가결 106, 부 11, 기권 8,이라는 압도적인 다수로 가결되었다.
이에 따라 동년 3월 14일에는 자체정비병력을 포함한 공병,수송,통신,해군등의 전투요원으로 구성된 2천명의 장병이 파월되었다.
제3차의 파병은 비둘기부대의 자체정비병력을 보강하기 위하여 1개중대의 장병을 증파한 것인데 이는 문제의 성격상 그렇게 논의가 벌어질 성질의 것이 아니였으므로 반대 2 기권 1을 제외하고는 1965년 6월 18일 제 50회 임시국회에서 전원이 찬표를 던졌다.
증파된 지원병력의 내용은 군사원조단 각부대 개편에 따른 증원병력 106명, 경비병력 205명, 그리고 LSM 승무원 147명, 총계 406명이었다.
제4차의 파병은 이른바 맹호,청룡등의 전투부대였다. '고'정권붕괴후 일곱 번째로 들어선 '구엔 카오 키' 월남수상은 나날이 치열의 도를 더해가는 전세에 대처하기 위하여 1965년 6월 21일자로 한국군의 증파를 요청하는 공한을 보내온 바 이에 접한 정부는 동년 7월 2일에 열린 정례국무회의에서 국군1개사단과 이에 따르는 지원부대를 파견할 것을 의결하고 이를 동원 12일부터 열리는 제51회 임시국회에 보내어 동의를 요청하였다.
이 동의안은 지금까지와 같은 후방지원부대가 아니라 직접 전투에 참가하는 전투부대이고 양적으로 많은 병력이 파견된다는 점에서 비둘기부대 파견때 보다도 더욱 심각한 반항을 불러 일으켰다.
따라서 파병에 따른 득실문제 명분문제 국가안전문제 등 다각적인 면에서 신중에 신중을 거듭하여 심의를 가한 결과 동년 8월 13일 재석 104명중 가 101, 부 1, 기권 2의 압도적인 다수표로 가결을 보아 9월 1일자로 1개 전투사단을 보냈다.
☆☆ 채명신 주월사령관 월남도착 제1성 (클릭하세요)
제5차로는 1개사단과 1개연대의 전투병력을 증파하는 일이었는데 이때에도 신중론과 반대론이 고조되었으나 1966년 3월 20일 국회에서 표결에 부친 결과 찬 95, 부 27, 기권 3의 다수결로 역시 가결되었다.
그러나 부표가 27로서 과거 어느때보다도 그 수가 많았다. 그리하여 지난 4월에는 우선 맹호의 잔류 1개연대만을 선파하였고 나머지 1개사단은 8월27일자로 보낸바 있는 백마부대가 바로 그것이니 회수로는 제6차가 되는 셈이다.
이로써 국군의 파월병력은 1개군단규모 약 4만명선에 이르고 있으며주월외국군중에는 미국에 다음가는 병력을 보내게 된 것이다.
한국군 파월일지
1960년대의 월남참전은 우리 역사상 최초의 대규모 해외파병이었으며, 정치·경제·군사적으로 국가발전에 크게 기여한 중대한 사건이었다.
월남참전을 결정한 당시의 상황은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민주주의 진영과 소련을 중심으로 하는 공산주의 진영이 대립함으로써 냉전체제가 계속되고 있었다.
그리고 한국 국내사정은 남·북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상황에서 군사혁명으로 수립된 정부가 국가안보를 의존하고 있는 미국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국민의 지지도 미약하여 불안정하였다.
또한 정부는 무력적화통일을 기도하고 있는 북한의 재침에 대비하는 등 국가안보태세를 튼튼히 하여야 했으며, 국가예산의 절반 정도를 외국원조에 의존하였으므로 경제를 일으켜서 실업자를 해소하고 가난을 극복하여야 했다.
한국은 미국을 위시한 자유우방국가들의 도움으로 김일성이 일으킨 공산침략을 일단 저지하였으나 정전상태에서 휴전선을 경계로 하여 첨예하게 대치하고 있음으로써 국가안보가 가장 중요한 과제 였다.
한편, 남 북으로 분단된 월남은 1960년대 초에는 민주국가인 남부월남이공산국가인 북부월남(월맹)의 도전을 받아 고전하고 있었다.
한국정부는 월남정부로부터 지원요청을 받은 바 있으며, 군 수뇌들과 월남 참전문제를 검토한 바 있다.
우리나라는 64년 9월 이래 최근에 이르기까지의 사이에 전후 6차에 걸쳐 국군을 월남에 파견하게 되는바 이제 그 경위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최초의 월남파병은 1964년 7월15일 당시의 '구엔 카'정부의 요청에 의하여 그 해 9월 22일에 1개 의무중대(제101이동외과병원) 장병 130명과 태권도교관단 10명을 보내게 된데서 비롯된다. 우리나라 헌법에는 제56조 2항에 "선전포고 국군의 외국에의 파견 또는
외국군대의 대한민국 영역안에서의 주둔에 대하여도 국회는 동의권을 가진다"라고 규정되어 있기 때문에 국군파월에는 그때마다 국회의 동의가 필요하였는데 정부의 동의요청에 접한 당시의 국회는 별로 이의를 제기함이 없이 이를 받아들여 만장일치로 가결하였다.
이리하여 파월된 130명의 의무중대장병들은 사이공 동남단에 위치하고 있는 '붕타우'라는 곳에 병원을 설치하고 월남군 전상자의 치료에 종사하는 한편 의료 써비스의 혜택을 받고 있지 못한 인근 민간인 환자에게까지도 봉사의 손길을 뻗치고 있을뿐더러 심지어는 베트콩 부상자까지도 수용가료하여 줌으로써 십자군정신을 아낌없이 발휘하고 있다.
제1차 의무중대파견에 뒤이어 다음해 1월에는 이른바 '비둘기부대'로 알려진 제2차 월남파병이 있었다.
즉 1965년 1월2일 월남의 '판 당란' 외상은 한국 외무장관에게 비전투부대 특히 공병단과 자체정비수단을 구비한 수송부대의 지원을 요청해 왔다.
이에 대해 정부는 동년 1월 8일자 국무회의에서 약 2천명으로 된 非전투지원부대를 파월시킬 것을 의결하고 이어 15일에 제47회 임시국회에다 동의요청을 하게 되었다.
당시 국회는 제1차파병때와는 달리 비둘기부대가 비록 非전투부대이기는 하나 전후방이 뚜렷치 못한 월남전선에서는 희생이 우려된다는 점, 월남의 정국이 심한 혼돈상태에 있다는 점, 미국의 대월정책이 확고하지 못하다는 점등을 이유로 해서 상당한 논란이 전개되었는데 26일자 본회의에서 표결한 결과 재적의원 125명중, 가결 106, 부 11, 기권 8,이라는 압도적인 다수로 가결되었다.
이에 따라 동년 3월 14일에는 자체정비병력을 포함한 공병,수송,통신,해군등의 전투요원으로 구성된 2천명의 장병이 파월되었다.
제3차의 파병은 비둘기부대의 자체정비병력을 보강하기 위하여 1개중대의 장병을 증파한 것인데 이는 문제의 성격상 그렇게 논의가 벌어질 성질의 것이 아니였으므로 반대 2 기권 1을 제외하고는 1965년 6월 18일 제 50회 임시국회에서 전원이 찬표를 던졌다.
증파된 지원병력의 내용은 군사원조단 각부대 개편에 따른 증원병력 106명, 경비병력 205명, 그리고 LSM 승무원 147명, 총계 406명이었다.
제4차의 파병은 이른바 맹호,청룡등의 전투부대였다. '고'정권붕괴후 일곱 번째로 들어선 '구엔 카오 키' 월남수상은 나날이 치열의 도를 더해가는 전세에 대처하기 위하여 1965년 6월 21일자로 한국군의 증파를 요청하는 공한을 보내온 바 이에 접한 정부는 동년 7월 2일에 열린 정례국무회의에서 국군1개사단과 이에 따르는 지원부대를 파견할 것을 의결하고 이를 동원 12일부터 열리는 제51회 임시국회에 보내어 동의를 요청하였다.
이 동의안은 지금까지와 같은 후방지원부대가 아니라 직접 전투에 참가하는 전투부대이고 양적으로 많은 병력이 파견된다는 점에서 비둘기부대 파견때 보다도 더욱 심각한 반항을 불러 일으켰다.
따라서 파병에 따른 득실문제 명분문제 국가안전문제 등 다각적인 면에서 신중에 신중을 거듭하여 심의를 가한 결과 동년 8월 13일 재석 104명중 가 101, 부 1, 기권 2의 압도적인 다수표로 가결을 보아 9월 1일자로 1개 전투사단을 보냈다.
☆☆ 채명신 주월사령관 월남도착 제1성 (클릭하세요)
제5차로는 1개사단과 1개연대의 전투병력을 증파하는 일이었는데 이때에도 신중론과 반대론이 고조되었으나 1966년 3월 20일 국회에서 표결에 부친 결과 찬 95, 부 27, 기권 3의 다수결로 역시 가결되었다.
그러나 부표가 27로서 과거 어느때보다도 그 수가 많았다. 그리하여 지난 4월에는 우선 맹호의 잔류 1개연대만을 선파하였고 나머지 1개사단은 8월27일자로 보낸바 있는 백마부대가 바로 그것이니 회수로는 제6차가 되는 셈이다.
이로써 국군의 파월병력은 1개군단규모 약 4만명선에 이르고 있으며주월외국군중에는 미국에 다음가는 병력을 보내게 된 것이다.
한국군 월남참전 연병력 규모
| 년 도 | 1965년 | 1966년 | 1967년 | 1968년 | 1969년 | 1970년 | 1971년 | 1972년 | 총 계 |
| 인 원 | 21,031 | 41,809 | 42,743 | 45,729 | 43,408 | 42,349 | 42,602 | 33,177 | 312,853 |
▣ 브라운 각서 ▣ 대한민국 서울 1966년 3월 4일 이동원 외무부장관 각하 각하께서는 대한민국 정부가 월남공화국 정부로부터 월남공화국에 대한 한국군 전투부대 증파에 관한 요청을 접수하였다고 본인에게 통지하였습니다. 각하께서는 또한 귀국정부가 대한민국의 헌법절차에 의거하여 국회의 승인을 받는대로 1개 연대전투단을 4월에 도착시키고 1개 사단병력을 7월에 도착시키기 시작하는 내용으로 요청받은 원조를 월남공화국 정부에 제공하기로 결정하였다고 진술하였습니다. 본인은 대한민국정부가 월남전선을 한국의 안전과 직결된 대한민국의 제2전선이라고 간주하기 때문에 그와 같은 대한민국의 결정이 취하여진 것이라는 귀하의 설명에 유의하였습니다. 본인의 정부는 월남에서 싸우고 있는 자유세계의 군대에 대하여 이미 고도로 효과적인 기여를 증강하려는 귀국정부의 결정을 충심으로 환영하는 바입니다. 본인은 대한민국의 안전과 발전에 있어서의 우리의 공동이익에 비추어 미 합중국은 한국방위의 안전이 유지되고 강화되어 또한 한국의 경제적 발전이 더욱 증진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은 조치를 취할 용의가 있다는 것을 말씀드릴 권한을 부여받았습니다. 가. 군수협조 ⑴ 한국에 있는 대한민국 국군의 현대화 계획을 위하여 앞으로 수년 동안에 상당량의 장비를 제공한다. ⑵ 월남공화국에 파견되는 추가병력에 필요한 장비를 제공하며, 또한 파월 추가병력에 따르는 일체의 추가적 원화경비를 부담한다. ⑶ 월남공화국에 파견되는 추가병력을 완전대치하는 보충병력을 정비하고 훈련하며, 수요재정을 부담한다. ⑷ 대한민국의 대간첩활동 능력을 지원하기 위하여 한 ·미 합동연구 결과에 따라 양국정부에 의하여 필요하다고 결정되는 요구를 충족 시키는데 기여한다. ⑸ 대한민국에서 탄약생산을 증가하기 위하여 병기창 확장시설을 제공한다. ⑹ 대한민국측 전용 통신시설을 제공할 것이며, 그 성격은 서울과 "사이공"에 있는 합중국 및 대한민국의 관계관에 의하여 합의될 것이다. 본 시설은 월남공화국 주둔 대한민국 부대와의 통신을 위한 요구를 충족할 것이다. ⑺ 파월 대한민국 부대를 지원하기 위하여 대한민국 공군에 C-54 항공기 4대를 제공한다. ⑻ 막사 및 독신장교 숙사와 취사, 식당, 위생 및 오락시설 등 부대복지를 위한 제관련된 시설을 개선하는데 필요한 재원을 군사원조계획 잉여물자의 매각대금에서 제공한다. ⑼ 파월한국군 전원에 대하여 1966년 3월 4일 비치 장군 및 김성은 국방부장관 간에 합의된 율에 따라 해외근무수당을 부담한다. ⑽ 월남에서 발생하는 전사상자에 대하여 최근 한미합동 군사위원회에서 합의된 액수의 2배 비율로 보상금을 지불한다 나. 경제협조 ⑴ 이러한 추가병력이 월남 국내에서 1개 예비사단, 1개 예비여단 및 지원부대를 동원유지함에 소요되는 순 추가비용의 전액과 동액의 추가 원화를 한국예산을 위하여 방출한다. ⑵ 상당수의 대한민국 병력 즉, 최소한 2개 사단병력이 월남공화국에 주둔하고 있는 동안에는 군수이관을 중지하며, 동시에 1967년 미 회계연도에는 1966 미회계연도에 중지된 품목과 아울러 1967 미회계연도 계획표에 있는 품목을 한국에서 조달한다. ⑶ (가) 파월 대한민국 부대에 소요되는 보급물자 용역 및 장비를 실행할 수 있는 한도까지 대한민국에서 구매하며 파월미군과 월남군을 위한 물자 중 결정된 구매품목을 한국에 발주한다. 그 경우는 다음과 같다. ① 한국에 생산능력이 있을 경우 ② 한국이 규격과 납품예정지원을 맞출 수 있을 경우 ③ 한국의 물품가격이 극동의 기타 공급가능지 가격과 비등하다는 것을 합리적으로 인정할 수 있을 경우 ④ 기타 점에 있어서 구매가 합중국 국방성의 규정과 절차에 부합할 경우 상기 경우에 배당되는 보급물자, 용액 및 장비는 자연 공급처 표에 기재될 것이며 그 표에 의하여 비한국 생산자의 입찰을 배재하고 한국공급처 안에 국한하여 구매할 것이다. (나) 합중국의 공급업자들과만 경쟁하는 원칙하에 AID가 월남공화국에서 농촌건설사업 선무, 구호, 보급 등의 사업을 위한 계획사업에 사용할 목적으로 구매하는 물자의 상당한 양을 한국이 적시 및 적가로 공급할 수 있는 최대한까지 한국에서 구매한다. (다) 월남공화국에 의하여 허가되는 범위내에서 한국청부업자들이 합중국정부 및 미국청부업자들이 월남공화국에 있어서의 한국인 민간기술자 고용을 포함하여 기타 용역을 제공할 수 있는 기회를 확대한다. ⑷ 수출진흥의 전반부문에 있어서 대한민국에 대한 기술협조를 강화한다. ⑸ 1965년 5월에 대한민국에 대하여 이미 약속한 바 있는 1억5천만불 차관에 추가하여 합중국정부는 적절한 사업이 개발됨에 따라 1억5천만불 약속에 적용되는 동일한 정신을 위하여 대한민국의 경제발전을 지원하기 위하여 추가차관을 제공한다. ⑹ 1966년도 재정 안정계획의 시행결과에 따라 적당한 경우 월남공화국에 대한 수출의 지원 및 기타 개발목적을 위하여 사용할 수 있는 1천5백만불의 프로그램톤을 1966년 중에 제공한다. 각하에게 본인의 최대의 경의를 표합니다. 대한민국 주재 미국대사 원드롯 지. 브라운 [자료편집: 최진현/vietvet.co.kr] |
한국군 파월일지
| 1964. 5. 9. 1964. 7, 15. 1964. 7. 15. 1964. 7. 31. 1964. 9. 22. 1964. 9. 28. 1964. 10. 31. | 미국은 한국을 포함한 25개 자유국가에 월남공화국 지원을 정식으로 호소 월남정부는 지원을 요청하는 호소문을 정식으로 한국정부에 보내왔다. 제1이동 외과병원 창동에서 창설 국군의 해외파견에 관한 동의요청안 제44회 국회 13차 본회의에서 통과 한국군사 원조단 140명 최초로 월남도착(이동외과병원 및 태권도 교관단) 제1이동 외과병원 시무식 및 국기계양 월남공화국과 사이공에서 지휘협정 체결 |
| 1965. 2. 5. 1965. 2. 9. 1965. 3. 16. 1965. 6. 21. 1965. 7. 9. 1965. 8. 13. 1965. 9. 20. 1965. 9. 25. 1965. 10. 9. 1965. 10. 20. 1965. 10. 23. 1965. 11. 4. 1965. 11. 17. 1965. 11. 25. 1965. 11. 30. 1965. 12. 16. 1965. 12. 27. | 경기도 현리에서 주월 한국군사 원조단(비둘기부대)결단 서울운동장에서 파월장병 국민환송대회 거행 ( ☞ 박정희 대통령 환송사 ) 비둘기부대 사이공 도착 디안에 상륙. 초대 단장 조문환 준장 구엔 카오 키 월남수상 한국군 전투부대 파월요청 백구부대 및 군사원조단 요원 460명 중파 제52회 국회 11차 본회의에서 전투사단 파월안을 가결 청룡부대(해병 제2여단) 포항에서 창설. 초대 여단장 이봉출 준장 주월한국군 사령부 창설, 초대사령관에 채명신 소장 취임 한국군 전투부대 청룡부대(해병제2사단) 월남중부에 있는 캄란에 상륙 주월한국군 사령부 사이공에서 개소 한국군 전투부대 맹호부대(수도사단) 월남중부에 있는 퀴논에 상륙 청룡부대 2대대 최초작전 전개(판랑시 동북 4km지점 318고지 점령) 사이공부두 LST 813함상에서 812함과 813함 최초로 임무교대 비둘기부대, 라이튜지역 학교 2개교실 및 의무실 1동, 사무실 1동 준공 맹호부대 기갑연대 베트콩소탕작전으로 적 31명 사살 청룡부대 투이호아 평야에서 청룡1호 작전실시(~66년1월16일) 맹호부대 1연대 2대대 비호2호 작전실시 |
| 1966. 1. 9. 1966. 1. 19. 1966. 1. 30. 1966. 1. 30. 1966. 2. 4. 1966. 2. 5. 1966. 2. 9. 1966. 2. 17. 1966. 2. 17. 1966. 2. 22. 1966. 2. 26. 1966. 3. 15. 1966. 3. 21. 1966. 3. 25. 1966. 3. 26. 1966. 4. 5. 1966. 4. 12. 1966. 4. 19. 1966. 6. 1. 1966. 6. 1. 1966. 7. 5. 1966. 7. 15. 1966. 8. 9. 1966. 8. 15. 1966. 8. 22. 1966. 8. 23. 1966. 8. 23. 1966. 8. 27. 1966. 9. 20. 1966. 9. 22. 1966. 10. 8. 1966. 10. 11. 1966. 10. 17. 1966. 10. 17. 1966. 10. 21. 1966. 11. 3. 1966. 11. 4. 1966. 11. 22. 1966. 11. 25. 1966. 11. 27. 1966. 11. 29. 1966. 12. 7. 1966. 12. 16. 1966. 12. 20. | 맹호부대 1연대 비호6호 작전실시 청룡부대 투이호아 서남방에서 청룡2호 작전실시(~2월21일) 월남군 어학학교 월남어반에 장교 12명, 사병24명 입교(12주과정) 청룡부대 9,10중대 월맹군(약800명) 야간기습 받았으나 격퇴. 적 사살179명 맹호 기갑연대 3대대는 재구2호 작전실시 주월한국군 사령부 건설지원단(비둘기)에 부대 표창수여 맹호 군악대 및 간호장교 20명이 퀴논 수녀원에서 한국의 춤 및 노래소개 해군수송단대 LST 807, 808 증파, LSM 609, 611와 LSM 605, 607 임무교대. 국회 분과위원장 민병권 외 국방위원일행 주월사 및 파월한국군 각부대 방문 청룡부대 청룡3호 작전실시 맹호부대 기갑연대 번개 66-3호 작전실시 해군수송단대를 해군수송분대로 증편 주월한국군사령부 직할부대로 배속변경 한국군 사령부 붕타우 한국군 휴양소 개소 청룡부대 투이호아 서남쪽 재건2호 작전실시 맹호부대 맹호5호 작전실시 건설지원단의 배속된 해병 공병중대를 해병여단에 배속변경 지휘체제확립 맹호부대 기갑연대 번개 66-5호 작전실시 맹호부대 제 26연대(해산진부대) 퀴논에 상륙 주월사 민사심리중대, 방첩대, 범죄수사대, 원호 근무대, 통신보안대 창설 군수 사령부를 100군수 사령부로 개편 주월한국군 군사정보대 창설(육군 인사 근무 제 421호) 백구부대 사령관 이응기 대령 전임되고 이계호 대령 임명 맹호 기갑연대3대대9중대 둑코(DUCCO)지역에 야간기습한 적 1개대대 격퇴 백마부대 선발대 나트랑 도착. 나트랑에 주월한국군 야전사령부 설치 주월한국군 사령부 부사령관 경질 신임 김용휴 소장 취임 맹호사단장 이취임식 채명신 소장이임 유명현소장 취임. 청룡부대 추라이로 이동하는 북극성 작전 실시. 9월 24일까지 부대이동 완료 백마부대 월남파월 국민환송식 거행 한국공군에 의한 한국과 월남의 직통항공로 수송업무개시 백마부대 지휘부 월남도착(닌호아) 비둘기부대 이길선하사 월남여자와 최초로 국제 결혼 주월사 주최로 월남보병학교에서 최대규모의 월남인 태권도 대회 개최 항공수송을 맡은 은마부대 창설(여의도) 주월 한국군에 M16 자동소총 510정이 처음으로 지급됨 박정희 대통령 주월한국군을 시찰 한국에서 제조된 장글복 25,000착이 처음으로 나트랑 100군수 사령부에 도착 건설지원단이 66년도 대민건설사업의 하나인 비안국민학교 이양식 거행 백마부대 불도자 5호 작전실시 맹호부대 맹호7호 작전실시 청룡부대 용안 작전실시 백마부대 투이호아지역 도깨비 2호 작전실시 건설지원단 공사장에 처음으로 전술기지를 설치 맹호부대 번개 65-11호 작전실시 청룡부대장에 김연상준장 취임 |
| 1967. 1. 3. 1967. 1. 26. 1967. 1. 29. 1967. 1. 30. 1967. 2. 10. 1967. 2. 10. 1967. 2. 14. 1967. 3. 1. 1967. 3. 15. 1967. 3. 24. 1967. 3. 31. 1967. 4. 3. 1967. 4. 10. 1967. 4. 21. 1967. 5. 10. 1967. 6. 2. 1967. 6. 9. 1967. 6. 19. 1967. 6. 28. 1967. 7. 9. 1967. 7. 10. 1967. 7. 15. 1967. 7. 21. 1967. 7. 22. 1967. 8. 5. 1967. 8. 16. 1967. 8. 20. 1967. 8. 30. 1967. 9. 11. 1967. 9. 15. 1967. 9. 22. 1967. 9. 25. 1967. 9. 26. 1967. 10. 7. 1967. 10. 27. 1967. 11. 5. 1967. 12. 2. 1967. 12. 13. 1967. 12. 17. 1967. 12. 22. | 맹호부대 맹호8호 작전개시(~3월4일) 백마부대 마두1호 작전개시(~2월7일) 백마부대 백마1호 작전개시(~3월9일) 청룡부대 괴룡1호 작전개시(~2월28일) 주월한국군 사령부 다낭에서 최대규모의 월남인 경노회 개최(500명 참가) 주월한국군용 국산전투식량 K레이숀 처음으로 월남전에 공급 청룡 11중대 짜빈동 야간기습 방어전투에서 월맹군 연대를 혈전끝에 격퇴 청룡부대 추라이에서 괴룡2호 작전실시(~3월13일) 오작교 작전(~4월18일) 맹호,백마부대 합동으로 월남전사상 최대 군단작전 건설지원단 빈딘성 피난민수용소에 구호품 전달 (백미500포 및 기타) 백마부대 백마2호 작전개시 (~4월16일) 해군 수송분대를 해군 수송전대로 승격 100군수 사령부 (십자성부대)에 처음으로 헬리콥터 중대 창설 대통령선거 부재자 투표 실시 십자성부대 나트랑 시내 일원에 도로포장 공사실시 국회의원 선거 부재자 투표 실시 맹호부대 26연대는 파월후 노획무기가 2,000정을 돌파하였다고 발표 100군수 사령관 이취임 이범준 준장 후임으로 유학성 준장 임명 백마 부대장 이취임 이소동 소장 후임으로 박현석 소장 임명 주월사 주관으로 맹호부대와 백마부대 합동으로 홍길동 작전실시(~8월25일) 신형장비 교체계획에 의거 HD-16 도자 2대를 건지단에서 수령 청룡부대 용두2호 작전중 해안침투 적선격침, 소총을 비롯 1,200 정을 노획 오작교 작전종료후 맹호사단에서는 쿠엔엠 촌에 新생활촌을 건립 이양 백마부대 제9사단장 이취임식 거행 맹호부대 1연대 1대대 푸캇비행장 서쪽지역 화랑 67-3호 작전실시 본국 후송용 (1/4톤 찦차) 폐차량 59대를 선적 수용 주월한국군은 월남대통령선거를 보호하는 화마이 데푸람 작전실시(~9월6일) 한국에서 만들어 공급되는 장글복 23,510 착이 도착 맹호부대 1연대 푸캇산 일대에서 비호 10호 작전 실시 (~9월26일) 맹호부대 제26연대 푸롱지역에서 태풍5호 작전 실시 (~9월17일) 백마부대 28연대 칸푸옥 일대에서 도깨비 3호 작전 실시 (~9월29일) 주월 한국군사령부 창설 2주년 기념식 거행 100군수 사령부 본청 완공(3월1일 착공) 탄비지역(닌호아 북방) 추수보호작전 도깨비 3-2호 작전 실시 월남 대통령 취임식 참석차 정일권 국무총리일행 17명의 경축사절단 방월 맹호부대 1연대 3대대 푸캇산 서북방에서 재구1호 작전실시(~11월7일) 맹호부대 26연대 1대대 바산 남방일대에서 폭풍9호 작전실시 백마부대 29연대 2대대 박쥐 1호 작전실시(~12월14일) 맹호부대 푸캇산 및 고보이 평야지역에서 맹호9호 작전실시 (~68년1월30일) 청룡부대는 추라이에서 호이안으로 이동하는 비룡작전실시(~68년1월28일) |
| 1968. 1. 5. 1968. 1. 23. 1968. 1. 30. 1968. 1. 30. 1968. 2. 17. 1968. 2. 17. 1968. 3. 15. 1968. 3. 16. 1968. 3. 20. 1968. 3. 20. 1968. 3. 28. 1968. 4. 1. 1968. 4. 5. 1968. 5. 5. 1968. 6. 2. 1968. 6. 1. 1968. 6. 11. 1968. 7. 22. 1968. 8. 5. 1968. 10. 11. 1968. 11. 4. 1968.12. 1. | 백마부대 28연대는 다총산 일대에서 다총산 작전실시 (~1월15일) 백마부대 29연대는 혼바산에서 박쥐9호 작전실시 (~1월24일) 주월 한국군은 적의 구정공세를 분쇄하기 위한 암행어사 작전실시 (~2월4일) 청룡부대는 부대이동과 적의 구정공세를 맞아 괴룡 작전실시(~2월28일) 백마부대 28연대 3대대는 다총산 일대에서 준마2-1호 작전실시 (~2월25일) 맹호부대는 전술책임지역(TAOR)에서 독수리10호 작전실시 (~4월1일) 해군 수송전대 창설기념행사 비둘기부대 창설 3주년 기념행사 맹호부대는 전술책임지역에서 독수리 맹호11호 작전실시(~4월27일) 100군수사령부(십자성) 나트랑에 공보관 건립기공식 거행 맹호사단 퀴논시에 자매결연한 인천시의 후원으로 퀴논 체육관 건립 청룡부대 제2여단은 호이안에서 지역확보를 위한 서룡 작전실시 (~6월1일) 백마부대 28연대는 미탄부락 일대에서 도깨비 6호 작전실시 (~4월7일) 백마사단은 혼바산 일대에서 백마6-1호 작전실시(~5월17일) 청룡부대 제2여단은 호이안에서 용궁 작전실시 (~6월28일) 주월한국군 사령부 야전지휘소를 야전 사령부로 창설 맹호사단은 전술책임지역내에서 독수리 맹호12호 작전실시(~7월19일) 백마부대 제20대 사단장 소장 유창훈 취임 청룡부대 제2여단 제3대 여단장 준장 이동호 취임 백마부대 동보(30연대)에서 백마9호 작전실시(~11월4일) 맹호부대 제20대 사단장 소장 윤필용 취임 청룡부대 제2여단 호이안 지역에서 승룡6호 작전실시 (~12월31일) |
| 1969. 1. 3. 1969. 1. 5. 1969. 1. 9. 1969. 1. 12. 1969. 1. 15. 1969. 1. 16. 1969. 1. 20. 1969. 2. 5. 1969. 2. 6. 1969. 2. 10. 1969. 2. 24. 1969. 2. 26. 1969. 3. 7. 1969. 3. 15. 1969. 3. 25. 1969. 3. 26. 1969. 3. 29. 1969. 4. 9. 1969. 4. 9. 1969. 4. 10. 1969. 4. 15. 1969. 4. 22. 1969. 4. 23. 1969. 5. 1. 1969. 5. 4. 1969. 5. 5. 1969. 5. 9. 1969. 5. 14. 1969. 5. 14. 1969. 5. 29. 1969. 5. 30. 1969. 6. 3. 1969. 6. 4. 1969. 6. 13. 1969. 6. 19. 1969. 6. 22. 1969. 7. 1. 1969. 7. 1. 1969. 7. 7. 1969. 7. 7. 1969. 7. 19. 1969. 7. 21. 1969. 7. 31. 1969. 8. 13. 1969. 8. 16. 1969. 9. 4. 1969. 9. 5. 1969. 9. 8. 1969. 9. 15. 1969. 9. 20. 1969. 10. 2. 1969. 10. 28. 1969. 11. 12. 1969. 12. 7. 1969. 12. 15. 1969. 12. 29. 1969. 12. 31. | 백마부대 28연대 3대대는 준마5호 작전실시 청룡부대 5대대는 승룡7-51호 작전실시 백마부대 29연대 2대대는 박쥐2-5호 작전실시 백마부대 30연대 1대대는 군마11호 작전실시 맹호부대 기갑연대 1연대 26연대 등 연대합동으로 번개68-5호 작전실시 청룡부대 3대대는 승룡7-34 작전실시 맹호부대 26연대는 해산진 6호 작전실시 청룡부대 5대대 승룡8-51호 작전실시 백마부대 30연대 1대대 군마12호 작전실시 청룡부대 1대대 승룡8-12호 작전실시 백마부대 29연대 2대대 박쥐2-6호 작전실시 맹호부대 기갑연대 번개2호 작전실시 청룡부대 2대대, 3대대, 5대대는 승룡9-31호 작전실시 건설지원단장 이취임식, 신임 준장 차규헌 구임 준장 전자열 백마부대 30연대는 동보5호 작전실시 적의 요새지를 격멸 백마부대 28연대 혼바산 북쪽일대에서 도깨비12호 작전실시 월남군 제3군단장 DOCAO TRI 중장에게 을지무공훈장 수여 백마부대 29연대는 나트랑 서북쪽 32km지점일대에서 박쥐21호 작전실시 청룡부대 3대대는 호이안 남방 3km지점에서 승룡10-31호 작전 실시 태국군사 친선 사절단 주월한국군 사령부 방문 청룡부대 2대대 승룡10-21호 작전실시 청룡부대 1대대 승룡10-11호 작전실시 주월한국군 사령부에 대한 월남대통령 부대표창식 거행 주월한국군 사령관 이취임식 거행. 신임 중장 이세호, 전임 중장 채명신 백마부대 28연대 2대대 투이호아 서북방 14km지점 도깨비2-7호 작전실시 청룡부대 3대대는 승룡11-31호 작전실시 백마부대 30연대 1대대 동보7호 작전실시 월남재향군인회 미망인 숙소 낙성식을 빈딘성 고밥군에서 거행 맹호부대 기갑연대3대대1연대2대대 빈케 서남쪽 13km지점 번개5호 작전실시 알젠틴 군사사절단 일행5명 야전사 방문 월남통합 불교집회 주최 석가탄신 2513년 기념축제에 이세호 사령관 참석 청룡부대 호이안 서쪽 고노이섬에 승룡12-1호 작전실시(한,미,월 연합작전) 빠콤 및 도합지역에서 백마부대 29, 30연대는 백마10호 작전실시 18개국 불교대회 대표 150명 붕타우 병원 위문방문 푸캇일대에서 맹호부대 각 연대에서 1개대대씩 차출 비호53호 작전실시 주월사 신임 부사령관 이건영 소장 취임 (전임 김용휴 소장) 공군지원단 창설 2주년 기념식 및 군사령관 부대표창. 청룡부대 제2여단은 호이안에서 승룡 13-31호 작전실시 맹호부대는 룽손지역에서 해산진 9호 작전실시 백마부대 28연대는 망망 계곡일대에서 도깨비13호 작전실시 청룡부대 제2여단 승룡13-32호 작전실시 맹호부대 1연대 3대대 재구22호 작전실시 백마부대 30연대 2대대 하오추이 서쪽에서 동보2-18호 작전실시 맹호부대 1연대와 26연대는 번개7호 작전실시 백마부대 30연대 1대대는 19베이스에서 동보1-14호 작전실시 퀴논 시범농장 준공 및 이양식. 월남 농림장관 참석 청룡부대 제2여단은 베리아섬 일대에서 승룡15-1호 작전실시 (상륙작전) 신임 야전사 부사령관 김종수 소장 부임 농림부 토지개량 직원등 메콩델타 개발사업 사전조사차 방월 쳥룡부대 파월 4주년 기념 호이안에서 실시 맹호부대는 4개 대대를 동원 창군기념 작전실시 2군단지역 한, 미, 월 전지역 계획회의 사령관 참석 청룡부대 3대대 및 5대대는 승룡17-1호 작전실시 청룡부대 2대대는 승룡18-21호 작전실시 주월사 참모장 이취임, 신임 박노영 준장, 구임 윤성민 준장 사령관 특별지시 군표 사용통제를 위해 쿠폰발급(군표+쿠폰=매매가능) 연합군 종합 사격대회 실시결과 한국군 종합승 |
| 1970. 2. 11. 1970. 2. 12. 1970. 2. 12. 1970. 3. 1. 1970. 4. 1. 1970. 4. 22. 1970. 7. 16. 1970. 8. 14. 1970. 9. 1. 1970. 9. 7. 1970. 9. 18. 1970. 9. 25. 1970. 10. 8. 1970. 11. 7. 1970. 11. 27. 1970. 12. 18. | 파월 연병력 200,000명 기록 해병제2여단 4대 여단장에 이동용 준장 취임. 맹호부대 월계 작전실시(~3월4일) 백마부대 백마11호 작전실시(~3월6일) 청룡부대 제2여단 황룡2호 작전실시(~4월15) 맹호부대,백마부대 합동작전 독수리 70-1호 작전전개(~5월18일) 맹후부대 호랑이작전 (~7월31일) 청룡부대 제2여단 황룡6호 작전실시(~8월19일) 백마부대 도깨비18호 작전실시(~9월24일) 청룡부대 제2여단 황룡7호 작전실시(~9월12일) 백마부대 동보12호 작전실시(~10월3일) 주월한국군 창설 5주년 기념식 맹호부대 돌풍 작전실시(~10월28일) 백마부대 22대 사단장에 조천성 소장 취임 맹호부대 22대 사단장에 이희성 소장 취임 백마부대 박쥐 작전실시(~12월30일) |
| 1971. 1. 5. 1971. 1. 30. 1971. 2. 1. 1971. 2. 22. 1971. 4. 23. 1971. 6. 21. 1971. 8. 2. 1971. 9. 25. 1971. 11. 5. 1971. 11. 29. 1971. 12. 24. | 주월한국군 전투부대 대대급 작전개시 백마부대 29연대 박쥐25호 작전실시(~2월7일) 동보13호 작전실시(~2월22일) 독수리71-1호 작전실시(~3월12일) 1971년도 하계 제1단계 작전실시(~5월14일) 1971년도 하계 제2단계 작전실시(~7월11일) 청룡 제2여단 5대 여단장에 허흥 준장 취임 주월한국군 창설 6주년 기념식 백마부대 23대 사단장에 김영선 소장 취임 맹호부대 23대 사단장에 정득만 소장 취임 주월한국군 제1단계 철수개시, 청룡부대 제2대대 환송식 거행 |
| 1972. 1. 5. 1972. 1. 7. 1972. 1. 14. 1972. 1. 22. 1972. 1. 27. 1972. 2. 24. 1972. 3. 18. 1972. 4. 1. 1972. 4. 13. 1972. 4. 18. 1972. 7. 7. 1972. 7. 10. 1972. 7. 16. 1972. 9. 4. 1972. 10. 20. 1972. 10. 21. 1972. 12. 10. 1972. 12. 25. | 맹호부대 재구1호 작전실시(~1월16일) 백마부대 동보18호 작전실시(~1월14일) 맹호부대 비호26호 작전실시(~1월30일) 맹호부대 해산진11호 작전실시(~2월7일) 비둘기 건설지원단 동부환상도로 준공 청룡부대 철수완료 개선 백마부대 도깨비22호 작전실시(~4월4일) 주월한국군 제1차 철군완료 맹호부대 소탕3호 작전실시(~4월18일) 맹호부대 안케패스 작전실시(~5월15일) 맹호부대 관우4호 및 재구3호 작전실시(~7월13일) 백마부대 동부19호 작전실시(~7월19일) 백마부대 성마72-1호 작전실시(~8월4일) 한,미간 군수 실무자회의 개최 주월한국군 철군계획 수립 백마부대 박쥐3-3호 작전실시(~10월26일) 주월한국군 철군에 따르는 종합검열 크리스마스 휴전 |
| 1973. 1. 1. 1973. 2. 3. 1973. 3. 14. | 각 전투부대 철군에 따른 전술기지 조정 주월군 퀴논, 나트랑, 사이공으로부터 철군개시 주월한국군 전부대 철군완료 개선 환영식 |
| 추가 자료가 입수되면 계속 입력 하겠습니다 www.vietvet.co.kr | |
# by | 2008/07/21 21:59 | 역사속으로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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